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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의 끝 리스본, 대항해시대의 심장, 도시 예술

by magic lamp 2025. 5. 13.

리스본 벨렌타워

 

대서양의 끝자락에 위치한 리스본은 포르투갈의 수도이자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입니다. 리스본의 대표적 역사인 1755년 대지진, 대항해시대의 중심지, 그리고 특색 있는 건축유산을 중심으로 도시의 정체성과 유산을 깊이 있게 탐방한다면 즐거운 시간이 될 것입니다.

리스본의 운명을 바꾼 1755년 대지진

1755년 11월 1일 아침, 리스본은 유럽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자연재해 중 하나로 기록된 대지진을 맞습니다. 진도 8.5~9.0에 달했던 이 지진은 도시의 85%를 무너뜨렸고, 수많은 건물이 붕괴되었으며, 화재와 쓰나미까지 겹치며 약 60,0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낳았습니다. 이 지진은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 유럽 전역의 철학, 정치, 건축, 도시계획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리스본 대지진의 첫 번째 충격은 건축 양식과 도시계획에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당시 총리였던 마르키스 드 폼발(Marquês de Pombal)은 도시를 재건하면서 르네상스적 도시계획 원리를 도입했고, 이에 따라 오늘날 리스본 도심인 바이샤(Baixa) 지구는 그리드형 도로망과 대칭적 건물들로 재구성되었습니다. 특히 내진 설계를 적용한 ‘폼발린 건축’은 유럽 최초의 지진 대응 건축기법으로 평가받습니다. 둘째, 이 대지진은 계몽주의 시대 유럽 지식인들의 철학적 사유에 깊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볼테르와 루소는 각각 인간 존재의 의미, 신의 정의, 자연에 대한 인식을 재해석하며 이를 철학적으로 탐구했고, 이는 근대 유럽 사상의 방향성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볼테르의 『캉디드』에서 묘사된 대지진 장면은 당시 사회의 비극과 신에 대한 회의적 시선을 드러냅니다. 셋째, 리스본 시민들은 이 재난을 극복하며 강한 회복력을 보여주었고, 이후 포르투갈의 국력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민족적 정체성이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오늘날 바이샤 지역을 걸으며 깔끔하게 정렬된 거리, 상징적인 아우구스타 개선문(Arco da Rua Augusta), 프라카 두 코메르시우(상업 광장)는 모두 대지진 이후 태어난 건축 유산이자 리스본의 ‘부활’ 상징입니다. 여행자가 이 도시를 이해하려면, 그 출발점은 반드시 이 대지진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대항해시대의 심장, 리스본의 세계 진출

15세기부터 16세기, 리스본은 세계사의 중심이 됩니다. 포르투갈은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의 인도 항로 개척을 시작으로 아프리카, 아시아, 남아메리카까지 광대한 해상 제국을 구축했고, 리스본은 이러한 대항해시대(Age of Discovery)의 핵심 항구 도시로 번영했습니다. 벨렘 지구는 당시 탐험과 식민의 출발점이자 오늘날 대항해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이곳에는 바스코 다 가마가 출항한 장소이자, 그의 무덤이 있는 제로니무스 수도원(Mosteiro dos Jerónimos)이 위치해 있습니다. 이 수도원은 16세기 마누엘 양식(Manueline)의 정수를 보여주는 건축물로, 대항해시대의 풍요와 신앙, 제국적 야망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마누엘 양식은 고딕 양식을 바탕으로 로프, 돛대, 해양 상징물 등을 조각한 독특한 스타일로, 포르투갈에서만 볼 수 있는 독자적 건축 양식입니다. 바로 인근에 위치한 벨렘 탑(Torre de Belém)은 원래 세관 및 항해 출입을 관리하던 요새로 지어졌으며, 이후 식민지 확장을 위한 방어 기지로 사용되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 탑은 타구스 강과 대서양의 경계를 지키는 상징이자, 포르투갈 제국의 자부심을 담은 기념비적인 구조물입니다. 이 시기 리스본은 향신료, 금, 노예무역, 아시아 무역로를 통한 천문학적인 부를 얻으며 유럽 최대 도시 중 하나로 성장했습니다. 당시의 부유함은 건축물과 예술, 종교 기관 후원으로 이어졌으며, 지금도 리스본 전역에 남아 있는 교회, 수도원, 광장들은 모두 이 시기의 유산입니다. 그러나 대항해시대는 빛과 그림자가 공존합니다. 식민지 확장은 원주민의 고통과 강제노동, 문화 파괴를 동반했으며, 리스본의 번영은 다른 문화의 희생 위에 세워진 제국주의의 한 단면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포르투갈은 이를 반성하며 역사 교육 및 박물관 전시를 통해 식민지 과거를 재조명하고 있습니다. 리스본의 거리에서 대항해시대의 찬란함을 느끼며 그 속의 복합적 맥락까지 이해하려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건축으로 읽는 리스본, 도시가 말하는 예술

리스본은 파리나 로마처럼 대규모 건축 군집으로 유명하진 않지만, 도시 자체가 하나의 박물관처럼 구성되어 있어 건축만으로도 그 역사와 문화를 충분히 읽어낼 수 있는 곳입니다. 건축 양식은 대지진 전의 바로크 양식과 대지진 후의 폼발린 양식이 공존하며, 고대 로마와 이슬람 통치 시기의 흔적도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먼저 바이샤 지구는 18세기 후 재건되면서 유럽 최초의 계획도시로 설계되었습니다. 마르키스 드 폼발은 단순한 복구가 아닌 도시 구조 개편을 단행하며, 직각 교차로 구성의 도로망과 대칭형 건물 배치를 도입했습니다. 모든 건물은 동일 높이, 균일한 창문 수, 내진 설계라는 기준 아래 지어졌으며, 이로 인해 바이샤는 당시로선 혁신적인 현대 도시계획 사례로 꼽힙니다. 반면 알파마(Alfama) 지역은 지진의 피해를 덜 입어 리스본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 붉은 지붕, 아줄레주(Azulejo)라는 전통 타일로 장식된 벽면이 특징이며, 이는 중세 이슬람 통치기의 건축과 문화가 혼합된 결과입니다. 리스본의 정체성을 가장 진하게 느낄 수 있는 동네로, 밤이면 파두(Fado)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감성적인 공간이기도 합니다. 리스본 전역에 널린 전통 타일 장식 아줄레주는 16세기 이후부터 건물 외벽을 장식하는 용도로 널리 사용되었으며, 포르투갈 특유의 미적 감각을 대변합니다. 종교적, 신화적, 역사적 주제를 담은 벽면 타일은 리스본의 미술사, 건축사, 심미안을 동시에 읽을 수 있게 해 줍니다. 최근에는 칼루스트 굴벤키안 미술관, 현대 미술센터(MAAT), 오세아노리오 해양박물관 등 현대 건축도 주목받고 있으며,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도시 구조는 리스본을 더욱 매력적인 도시로 만들어줍니다.

 

리스본은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재건된 도시, 대항해시대를 통해 세계로 뻗어나간 제국의 심장, 그리고 독창적인 미학과 전통을 간직한 건축 도시입니다. 이 세 가지 요소는 각각의 유산으로 남아 현재 리스본의 골목과 강변, 광장과 성당에 고스란히 녹아 있으며, 여행자는 이를 따라 걸으며 도시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대서양의 끝에서 시작된 리스본의 이야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그 속으로 들어가는 첫걸음은 바로 ‘이해’에서 시작됩니다.